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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9일, 국민적 사랑을 받아온 방송인 이상용 씨가 81세로 별세했습니다.
'뽀빠이 아저씨'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진 그는
수십 년간 군 장병들과 어린이, 나아가 대한민국 전체에게 희망과 용기를 전해준 상징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갑작스러운 비보에 많은 이들이 추억과 애도의 마음을 나누고 있습니다.
빈소 및 발인 안내
- 빈소: 서울 반포동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 발인: 2025년 5월 12일(월) 오전 9시 40분
- 장지: 용인시 선영
빈소에는 연예계 동료는 물론, 군 관계자들과 일반 시민들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으며,
많은 이들이 조용한 헌화와 묵념으로 고인을 추모하고 있습니다.
방송 인생 요약
이상용 씨는 1971년 CBS 기독교 방송에서 MC로 첫 데뷔했으며,
이듬해인 1972년 MBC ‘유쾌한 청백전’을 통해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1975년부터 KBS의 어린이 프로그램 ‘모이자 노래하자’의 진행을 맡으며 ‘뽀빠이 아저씨’라는 애칭을 얻게 되었고, 이는 그의 대표적인 이미지로 자리 잡았습니다.
1989년부터는 군부대 위문 프로그램인 MBC ‘우정의 무대’의 메인 MC를 맡아 ‘군인들의 형님, 대한민국의 응원가’로 불리며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카리스마 있는 외침 “정신일도 하사불성(精神一到 何事不成)”은 당시 젊은이들에게 용기와 신념을 심어주는 메시지였습니다.
프로필 및 가족
- 출생: 1944년 4월 2일, 충남 서천군 서면
- 학력: 대전고 → 고려대 농과대학 졸업 → 중앙대 사회복지학 석사 수료
- 군 복무: 육군 장교로 임관, 중위 전역
- 가족: 부인 윤혜영 씨, 2남 1녀, 며느리 박지영 씨, 손자 이노엘 군(2011년생)
- 종교: 가톨릭 (세례명: 헨리코)
이상용 씨는 방송인으로서의 커리어뿐만 아니라 가족을 사랑하는 가장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가족들은 언제나 그의 곁에서 조용히 힘이 되어주었고, 이번 장례 절차 역시 유족 주도로 차분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유년기와 건강 극복
그는 태어날 때 미숙아로 태어나 “살 수 없다”는 판단을 받고 생매장 위기까지 겪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7살이던 막내이모가 이상용을 구해 산속으로 데리고 도망쳐 목숨을 구했다는 일화는 지금도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립니다.
6살이 되어서야 걸음마를 뗐고, 학교에 입학해서도 책가방을 들 힘조차 없어 아버지가 대신 들어주던 유년 시절.
그는 운동을 통해 허약한 몸을 극복했고, 고교 시절엔 보디빌딩 대회에 나가 상까지 받을 정도로 강인한 체력을 키웠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이후 그가 '뽀빠이'라는 캐릭터로 완성되는 데 결정적인 밑거름이 됩니다.
사회공헌과 복돈 나눔
이상용 씨는 어린 시절의 가난과 고통을 기억하며, 50년 동안 매일 '복돈'을 나눠주는 삶을 실천했습니다.
천 원짜리 새 지폐 100장을 매일 준비해, 어린이, 폐지 줍는 어르신, 시장 상인 등에게 상황에 맞게 나눠주는 것이 그의 일과 중 일부였습니다.
“폐지를 한 리어카 가득 모아야 4천 원인데, 내가 2만 원을 주면 5일 치 행복을 주는 셈이죠.”
이 말은 단순한 선행이 아닌, ‘작은 행동으로 큰 위로를 주는 삶의 철학’이었습니다.
억울했던 오해와 복귀
1996년, 그가 어린이 수술비를 지원하던 과정에서 ‘횡령’이라는 억울한 오해를 받으며 방송에서 물러나야 했습니다.
이후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언론의 보도와 대중의 시선으로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의 부친은 아들의 결백을 증명하고자 대전역에서 인쇄된 전단지를 나눠주다 심장마비로 별세하는 비극도 겪었습니다.
이상용 씨는 2024년 ‘회장님네 사람들’ 방송에서 “억울한 마음도 있었지만 이제는 모두 잊었다”며, ‘진심은 언젠가 전달된다’는 믿음을 남겼습니다.
마지막 활동과 유언 같은 말
2024년 12월,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특별전에 참석해 전시를 관람하는 모습이 공개되었고,
유튜브 콘텐츠와 강연, 실버 대상 방송 등 활발히 활동해왔습니다.
그는 늘 후배들에게 “인생은 진심으로 사는 것”이라며 말과 행동으로 실천하는 선배로 기억됩니다.
그의 대표 구호 “정신일도 하사불성”은 단지 방송용 멘트가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온몸으로 살아낸 그의 인생 자체였습니다.
이상용 씨는 단지 한 명의 방송인이 아닙니다.
그는 시대의 목소리였고, 국민에게 웃음과 울음을 동시에 전했던 상징적인 인물이었습니다.
‘뽀빠이’라는 별명 속에는 따뜻함, 유쾌함, 성실함, 진심이 모두 담겨 있었습니다.
그가 남긴 말, 행동, 신념은 앞으로도 대한민국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살아남을 것입니다. 진심으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